'롱기누스의 창'을 아는가. 예수의 성혈 전설과 함께하는 창이다. 라틴어로 Lancea Sancta, Lancea Longini라고 하고 영어로는 Holy Lance, Lance of Longinus, Spear of Destiny라고 불린다. '성스러운 롱기누스의 창'이라는 뜻이다.
성경의 요한복음 19장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그의 죽음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 창으로 찌른 로마병사의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외경 버전에는 롱기누스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그는 눈에 병이 있었는데, 예수의 옆구리에서 흐른 피를 눈에 바르자 시력을 되찾게 되었다. 감동한 롱기누스는 변심하고,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고, 전도하다가 순교당한다. 성 론지노, 예수를 찌른 로마병사는 훗날 성인이 되었다.
이 롱기누스의 창은 후대에 걸쳐 신화와 전설로, 문화콘텐츠로 변주되며 거듭 등장하게 된다. 성혈이 묻어 성스러운 힘을 지니게 되자 역사 속 악당들이 그 창의 힘을 얻기 위해 탐사하는 것이 대표적인 콘텐츠다.
그리고, 저 유명한 '신세계 에반게리온'에도 등장한다. 3세대 애니메이션의 걸작으로 꼽히는 '에반게리온'에서 '궁극의 무기'로 불리는 롱기누스의 창은 남극의 하얀달에서 '아담'이라는 인물과 함께 사람들에게 발견된다. 생명의 종자(기원이 되는 존재)를 통제하기 위한 무기다.
에반게리온 속에서 이 무기는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데, 그 절정은 우주에 있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던져진 롱기누스의 창이 달에 꽂히는 장면. 수많은 에반게리온 팬들은 이 장면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1995년에 방영된 '신세계 에반게리온' 상영 20주년을 맞이한 2015년, 실제 에반게리온의 배경이 되는 해가 되자, 팬들이 환호할만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롱기누스의 창을 달에 꽂는 프로젝트'. 일본의 민간 우주기업인 '하쿠토'와 협력해 티타늄 합금 재질로 롱기누스의 창을 제작해 달 표면에다 실제로 꽂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달에 꽂을 롱기누스의 창은 길이 24cm, 무게 30g. 실제 롱기누스의 창 크기의 400분의 1 모형이다. 이 모형을 달에 꽂고, 그 과정을 촬영하겠다는 것.
이 프로젝트가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에반게리온 팬들의 응원은 뜨거웠다. 프로젝트 실천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1억엔(당시 환율 기준 약 9억3700만원)을 모금하려 했으나, 달성률이 54%에 그쳐 무산됐다. 펀딩에 참여한 사람은 1384명. 그들은 진정한 '덕후'임을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입증한 셈이다. 그때 모금된 5469만5000엔은 일본 사상 최대 크라우드 펀딩 모금액이라고 알려져 있다.
7m짜리 롱기누스의 창이 꽂힌 일본 우베시. 우베스틸이 제작해, 그 제작과정을 공개하는 등 홍보도 열심이다. / X
달은 아니지만, 땅에 꽂힌 '롱기누스의 창'은 에반게리온 팬들에 의해 실현됐다. 2023년 10월, 에반게리온의 원작자인 안노 히데아키의 고향인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거대한 창 동상이 세워진 것. 7m 크기로 주조된 우베 '롱기누스의 창'은 애니메이션이 방영된 지 30주년이 다가오면서 롱기누스의 창을 어딘가에 꽂고 싶어하는 ‘덕후’들의 소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2025년은 에반게리온 방영 30주년이 되는 해. 마침 아르테미스 미션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시점인지라 에반게리온 팬들의 또다른 프로젝트가 추진되지는 않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