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칼럼: 우주라는 테마파크]
달을 향한 '로맨틱 프로젝트'

2025.04.11 10:00:06

"우주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실은 과학에 대한 상식도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칼럼을 시작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우주는 무엇일까'라는 순전히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입니다. '우주라는 테마파크'는 과학적인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아니, 못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우주를 통해 느끼는 테마파크처럼 다양한 즐거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김정우 교수의 글이다. 이 글은 코스모스 타임즈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


 

▶‘블루 고스트’가 달에 싣고 간 무엇

3월 초의 일이었습니다. 아주 생소한 조합의 제목이 달린 기사가 일제히 우리나라 언론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민간 우주기업인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가 무인 달 탐사선 ‘블루 고스트(Blue Ghost)’를 달에 착륙시켰다는 뉴스입니다. 그런데 기사의 헤드라인에 있는 "한국시조 8편, 달에 간다" “한국 시조, 달 터치다운...”이라는 말이 문과생인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달 탐사선에 시조라니?

 

아시다시피, 시조는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입니다. 정형시란 글자 수의 제한 없이 자유롭게 쓰는 자유시와는 달리 글자 수가 제한되어 있는 형식을 말합니다. 그러한 제한이 표현의 제한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시조의 장점은 소리내어 읽으면 운율이 살아나서 자유시 못지않은 맛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조를 ‘쓴다’, ‘짓는다’라고도 하지만, 억양을 넣어서 소리를 내어 시를 읽거나 외운다는 뜻을 지닌 ‘읊는다’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갑자기 무인 달 탐사선이 시조를 싣고 달에 착륙한 것일까요?

 

▶지구인 예술작품을 달에 보내는 ‘루나 코덱스’ 프로젝트

‘블루 고스트’ 안에는 전세계 4만여 명의 그림과 글, 음악, 영화 등을 달로 보내는 ‘루나 코덱스(Lunar Codex)’ 프로젝트 중 하나인 <폴라리스 트릴로지(Polaris Trilogy)>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지에서 보이는 것처럼 ‘달을 향해 보내는 시(Poems for the Moon)’들이 담긴 것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폴라리스 트릴로지> 측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형식인 시조 시인들의 작품을 요청하였고, 8명의 작가가 쓴 8편의 시조가 수록되었다고 합니다. (영문으로 쓴 시조가 3개 더 있습니다만, 시조의 영역으로 넣기는 애매해서 제외했습니다.) 모두 달을 비롯하여, 해, 별, 하늘 등을 소재로 사용한 것들입니다.

 

덕분에 저도 오래간만에 시조를 읽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독자분들도 한 번 읽어보시죠. 아마도 소리를 내어 읽으시면 느낌을 더 잘 아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달에게 - 구충회

​지구에서 달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수십억 년 세월 중 한순간을 살지만

살기가 매우 어렵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코비드는 우연히 생긴 병이 아닙니다

인간의 끝이 없는 욕망이 원인입니다

지구가 매우 심하게 오염되었기 때문이죠

 

생명체가 살기에 달세계는 어떤가요?

인간이 살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주선 편에 이 편지를 띄웁니다

 

운석의 꿈 - 김달호

은하수 길을 따라 이 땅에 오신 손님

함께 온 원자 하나 사랑에 빠졌다가

지구촌 일궈낸 낙원 우주속에 더 푸르다

​은하 - 김흥열

​이른 봄 뿌린 꽃씨 봄바람 타고 올라

환상의 밤하늘에 별꽃으로 만발했나.

동화 속 어린 왕자가 꿈을 꾸는 궁전이다.

​강촌의 달 - 서관호

​눈밭이 희다한들 달빛이 없어봐라

배꽃이 곱다한들 달빛을 가려봐라

강물이 맑다고 한들 달 안 뜨면 뭐하니?

 

​∎ ​해를 안고 오다 - 이광녕

​손잡고 새해 아침 에덴동산 타고 올라

빈 가슴 금빛 가득 해를 안고 돌아오니

금실이 곱게 물들어 청실홍실 더 고와라.

 

∎ ​신비한 하늘 시집 - 박헌오

​하늘이 들고 나온 손톱만한 노란 시집

책장을 넘길 때마다 떨어지는 은행잎

연못에 떠돌다 만나 시어(詩語)들은 짝짓는다

 

밤마다 불어나는 책 무거워져 걱정인데

보름날 만삭됐다, 덜어내어 지운 그믐

이듬달 손톱만한 새 책 들고 나와 떠간다.

 

칠월칠석날- 채현병

​한낮의 빗방울은 상봉의 눈물방울

한밤의 빗방울은 이별의 눈물방울

후두둑 떨어지기 전에 신방부터 차리세

​∎ 월광 소나타 - 최은희

진통하는 어스름을 털어내는 만삭의 달

사리 밀물 범람하듯 금빛 양수 툭, 터지면

동여맨 치마끈 풀고 에로스를 낳는다

 

국문학도이긴 하지만, 문학평론가가 아닌 제가 이 시조들에 대해 문학적으로 평가할 뜻은 없습니다. 다만, ‘달 탐사’라는 프로젝트의 목적에 맞춰 소재 중심으로 선택된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만 합니다.

 

▶어쩌면 ‘루나 코덱스’는 새로운 상상력의 원동력

이 프로젝트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2017년 영화인 <컨택트(Arrival)>가 생각 났습니다. 어느 날, 지구 곳곳에 450m 높이의 거대한 우주선들이 도착합니다. 아무런 움직임도, 아무런 메시지도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한 우주선. 그래서 지구인들은 이 우주선을 타고 온 외계인들이 왜, 무엇을 위해서 왔는지를 알고 싶어합니다.

 

결국 지구에서는 언어 해독 전문가인 뱅크스 교수(에이미 아담스 분)를 통해 그들과 조금씩 소통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 영화가 이렇게 단순한 스토리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다 복잡한 철학적 배경이 담겨 있는 묵직한 영화이지요.

 

어쨌든, 달에 착륙한 우리 시조들은 누가, 어떻게 이해하게 될까요?

 

실제로 어떤 외계인이 달에 착륙하여 타임캡슐을 열고 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착륙 자체가 가능한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어쩌면 누군가 발견해서 공감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갖고 있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과학의 눈으로 보면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과학적 성과에서 기인된 새로운 기대감을 키워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보면 ‘루나 코덱스’는 과학적 관점의 달 탐사라기보다는 달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키워주기 위한 프로젝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인지 모를 외계 생명체를 향해 예술적인 메시지를 심어놓고, 누군가 그것에 공감하게 될 순간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과학의 힘으로 달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만큼 중요한, 달에 대해 늘 새로운 설렘을 갖게 해주는 로맨틱한 프로젝트가 아닐까요?

 

이 로맨틱한 프로젝트가 어떤 결말을 맺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김정우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오면서 다양한 기업의 수많은 카피를 만드는 등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에 깊이 관여해온 김정우 교수는 '스스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정의한다.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문화창의학부 문화콘텐츠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 교수는 <광고언어연구> <광고언어론> <광고, 소비자와 통하였는가?> <문화콘텐츠 제작> <미디어 글쓰기> <문화콘텐츠와 경험의 교환> 등 많은 저서를 썼다. 

김정우 교수(고려대 문화창의학부) newsroom@cosmos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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