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도 갈아먹는다,
머스크 위협하는 '미친 키위'

뉴질랜드 로켓 제조사 로켓랩 설립자 피터 벡
천문대 관장 아들로 태어나, 어릴때부터 밤하늘에심취
대학 졸업장도 없이 독학으로 로켓 마스터한 괴짜

소형 발사체 일렉트론, 내년 발사 뉴트론으로 '주목'
"로켓은 잔인한 산업, 160초만에 성공과 실패 갈려
작은 실수 하나만으로도 불꽃놀이로 끝날수도"

3월 24일 글로벌 로켓 발사업계에선 또 하나의 흥미로운 기록이 세워졌다. 뉴질랜드의 로켓제조사 로켓랩(Rocket Lab)이 3월 16일 미국 버지니아주 월럽스 아일랜드 우주기지에서 2개의 100㎏짜리 민간 위성을 발사한 데 이어, 1주일여만에 뉴질랜드 남섬에 있는 이 회사의 발사기지에서 2개의 민간 이미지 위성을 저궤도로 발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2건 모두 발사된 로켓은 길이 18m짜리 일렉트론(Electron)이었다. 뉴질랜드에서 발사된 일렉트론의 1단 로켓(부스터)은 낙하산으로 바다에 떨어진 뒤 회수됐다.

 


올들어 평균 4.19일마다 로켓을 발사하는 스페이스X에 익숙한 이들에겐 놀랄 일도 아니지만, 사실 2006년에 설립된 로켓랩은 전세계에서 스페이스X 다음으로 로켓 발사가 잦은 우주기업이다. 소형 발사체 일렉트론은 지금까지 35회 발사돼 32번 성공했다. 작년에 6번 모두 성공적으로 발사했고, 올해는 15회 발사가 목표다. 로켓랩은 이미 소형 탑재물 발사 시장에선 ‘지배적인 플레이어’다.


이 로켓랩의 차세대 로켓은 위성 시장의 현재 트렌드인 저궤도 군집(群集)위성을 한 번에 수십 개씩 발사할 수 있는 뉴트론(Neutron)이다. 로켓랩의 재무담당 임원인 애덤 스파이스는 3월21일 한 컨퍼런스에서 “계획대로 올해 안에 뉴트론의 지상연소시험을 마치고 내년에 상용화해 팰컨 9과 직접 대결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로켓 발사시장의 정점(頂點)에 있는 스페이스X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머스크의 개인 기업인 스페이스X가 지난 1월 투자 라운드에서 평가 받은 회사 가치는 1370억 달러(약 177조 원). 이에 비하면, 로켓랩의 시가총액은 3월30일 현재 19억2100만 달러(약 2조4800억 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의 많은 분석가들은 여러 신생 로켓기업 중에서 스페이스X에 도전할 만한 기업으로 단연 로켓랩을 꼽는다. 로켓랩의 설립자이자 CEO인 피터 벡(45)은 대학 졸업장도 없이, 독학으로 로켓의 모든 것을 마스터한 괴짜다. 2013년 그가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고작 500만 달러(약 6억5000만원)의 투자를 받으려고 했을 때엔 미 투자가들로부터 ‘미친 키위(crazy kiwi)’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스페이스X와의 가격 경쟁, 승산 있다” 
로켓랩의 재무담당 임원 스파이스는 이날 “팰컨 9의 1회 발사비용은 6700만 달러이고, 로켓랩이 개발하는 뉴트론은 5000만~5500만 달러”라며 “㎏당 발사비용에서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뉴트론은 팰컨9처럼 1단 로켓(부스터)이 수직으로 재착륙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로켓이다. 그러나 저궤도까지 수송 가능한 팰컨 9의 탑재중량은 22.8톤이고, 뉴트론은 13톤이다. 단순 계산하면 팰컨 9의 kg당 발사비용이 2938달러(약 381만원)로 훨씬 낮다. 그러나 스파이스는 “뉴트론 발사에 실제 드는 비용은 2000만~2500만 달러이어서, 1회 발사때마다 50%의 이익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또 “스페이스X의 중심축이 앞으로 초(超)중량 발사체인 스타십으로 옮겨가면, 이는 뉴트론에겐 매우 유리한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설립자 벡이 모자를 씹어 먹어야 했던 이유
로켓랩의 현재 주력 발사체인 일렉트론은 1회용 로켓이다. 짧은 시간적 여유에도, 소비자의 발사 시점을 탄력적으로 소화해 저궤도까지 소형 위성들을 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미니·소형 위성들은 태양풍·지자기(地磁氣)폭풍에 약해 계속 쏴야 하는데다, 저궤도가 소형 군집위성들로 채워지면서 일렉트론의 수요는 늘고 있다. 그러나 탑재중량이 300㎏인 일렉트론의 1회 발사 비용은 750만 달러로, ㎏당 발사비용이 2만5000달러에 달한다. 팰컨 9(㎏당 2938달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유연한 발사 시점이 가능해도, 10배 가까이 더 지불할 수요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일렉트론의 1단 로켓(부스터)를 회수해 재사용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겠지만, 설립자인 피터 벡은 이렇게 작은 로켓에 재착륙을 위한 역추진 장치와 연료까지 장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래서 2018년 그는 CNBC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가 재사용 로켓으로 발사한다면, 모자를 먹겠다(I will eat my hat)”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우리말로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로켓랩은 2020년 11월 낙하산으로 바다에 떨어지는 1단 로켓을 헬리콥터로 낚아채 회수하고 이어 연소시험을 하는 데 성공했다. 설립자 벡은 다음해 3월 1일 트위터에 모자를 썰어 먹는 모습을 공개했다. 로켓랩은 작년 5월, 회수한 1단 로켓이 사용된 일렉트론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아예 바다에 빠뜨렸다가 회수하면?
일렉트론 부스터는 연료가 소진된 빈 동체도 2.2톤에 달해 낙하산을 펼치고도 시속 90㎞로 떨어진다. 이를 공중에서 헬리콥터로 회수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상에 재착륙할 때 무게가 22톤에 달하는 팰컨 9의 1단 로켓에는 애초부터 적용할 수 없는 개념이다. 로켓랩도 작년에 몇 차례 헬리콥터 회수에 실패했다. 그래서 바다에 추락한 로켓을 회수해 재사용할 수 있을지를 검사했다. 엔진의 주요 부품과 연료를 주입하는 전기 장치는 소금물에 치명적이다. 그런데 회수된 일렉트론의 상태는 의외로 괜찮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해상 회수로 방향을 틀면서, 1단 로켓에 방수(防水) 처리를 강화했다. 로켓랩은 3월21일 바다에서 건진 일렉트론 1단 로켓의 러더퍼드(Rutherford) 엔진이 새 엔진과 동일한 조건인 200초의 연소와 수 차례의 재점화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머스크의 적은 베이조스가 아니라, ‘배고픈 하마’ 뉴트론”
그러나 로켓랩이 스페이스X의 팰컨 9를 겨냥한 주력 로켓은 내년 발사가 목표인 뉴트론이다. 길이 42.8m에 총 중량이 480톤인 뉴트론은 팰컨 9과 마찬가지로, 2단 로켓과 분리된 1단 로켓이 대기권에 재진입해 지상에 수직 착륙한다. 1단 로켓 한 개를 10~20회 재사용하는 것이 목표다. 팰컨 9의 재사용 회수와 비슷하다.
 
뉴트론의 길이는 42.8m에 이륙시 중량은 480톤. 반면에 팰컨 9은 70m에 549톤이다. 뉴트론은 뚱뚱한 모양새다. 그래서 업계에선 “머스크의 진짜 적(敵)은 베이조스가 아니라, ‘매우 배고픈 하마(hungry, hungry hippo)’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뉴트론의 1단 로켓에 장착되는 9개의 아르키메디스(Archimedes) 엔진은 최첨단 3D 기술을 이용해 만들며, 올해 안에 지상연소시험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일렉트론의 러더퍼드 엔진도 하루에 1개꼴로 3D 제작된다. 재무담당 임원인 스파이스는 로켓랩의 발사 주문은 1년 전 2억4100만 달러에서 배로 뛰어서 현재 5억300만 달러 어치가 밀려 있다고 밝혔다.


로켓 전공학과 없어 대학 포기하고 독학
과거에 로켓 발사는 주로 정부가 주도했다. 지금은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와 같은 억만장자 우주 거물(space barron)들의 몫처럼 느껴진다. 로켓랩을 설립한 피터 벡에겐 우주 거물들이 내비치는 화려함은 없지만, 스페이스X 다음 가는 로켓 발사 성공률을 갖고 있다. 
 


뉴질랜드 남섬에서도 최남단인 인버카길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벡은 어려서부터 별에 푹 빠져 살았다. 아버지는 이곳 천문대의 관장이었다. 헬리 혜성이 지나갔던 1986년 아홉 살이었던 벡은 학교에서 독보적인 헬리 전문가였다. 10대 시절엔 기압차(氣壓差)를 이용한 물로켓을 만들며 놀았고, 그가 읽는 책은 온통 로켓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1995년 대학 진학 무렵엔, 당시 로켓 전공학과가 없어서 진학을 포기했다. 그때 뉴질랜드엔 우주산업이나 전담 우주국도 없었다.


대신에 벡은 국제적인 가전 기업인 피셔 앤 페이켈 공장에 금형 제작 견습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회사 작업실에서 밤에는 최첨단 기계와 재료를 이용해 로켓과 추진제를 실험하며 보냈다. 그때 만들었던 것이 로켓 바이크, 로켓 롤러 스케이트, 제트팩이라고 한다. 벡은 2006년 로켓의 성지(聖地)인 미국 캘리포니아와 NASA를 방문했다. 그런데 우주 미션의 비용을 현격히 줄일 수 있는 소형 발사체 개발에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을 깨달았다. 대형 우주기업들은 관료주의에 찌들었고, 소형 위성들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조한 대형 로켓이 다른 임무로 발사될 때에 남는 여유 공간에 끼어넣기로 탑재됐다. 스페이스X의 로켓 개발은 실패를 거듭하던 시절이었다. 스페이스X의 첫 로켓 팰컨 1은 2008년 9월에 처음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벡은 그해 뉴질랜드로 돌아와 로켓랩을 설립했다. 


뉴질랜드에서 온 ‘미친 키위’
하지만 늘 자금이 부족했고, 군사용 드론 제작과 국방 관련 주문을 받아 겨우 회사를 꾸려갈 수 있었다. 2012년 벡은 제대로 된 소형 발사체를 만들기 위해, 다시 실리콘 밸리로 날아갔다. 그러나 2010년 대 스페이스X는 재사용 로켓 개발에 번번이 실패하고 있었고, 투자가들은 민간 로켓 제조기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벡은 미국 매체 패스트 컴패니에 “지금 같으면 실리콘 밸리에선 로켓 회사 자금 수억 달러는 쉽게 모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때 500만 달러만 있으면 로켓을 만들 수 있다는 나를 뉴질랜드에서 온 ‘미친 키위’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벡은 다행히 선마이크로시스템을 설립했던 억만장자 비노드 코슬라(Khosla)와 연결됐고, 2013년 그의 벤처 회사로부터 500만 달러 이상을 투자 받았다. 코슬라가 움직이니, 여러 투자 회사들이 관심을 보였다. 2015년부터 2021년 사이 네 차례에 걸쳐 2억8000만 달러 이상의 벤처 자본을 더 모을 수 있었다. 코슬라만 2,8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로켓랩은 2018년 1월 두번째 시도에서 일렉트론을 성공적으로 발사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벡은 “로켓은 여전히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로켓 제조는 코너마다 샷건(shot gun)이 기다리고 있는 미로(迷路)를 밤에 걷는 것과 같다. 한 번만 잘못 돌면 끝”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완벽해야” 강박적 열정
둥그러운 앳된 얼굴에 고수머리인 벡은 겉모습과 다르게, 일 중독자다. 직원들은 “벡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처럼 활기가 넘치지 않으면 좌절한다”고 말한다. 벡은 “내 기대치는 매우 높다”며 “스트레스 없이 오전8시에서 5시까지 일하면서, 이 회사가 이룬 규모에 도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불확실성이 특히 많이 존재하는 로켓 제조에서도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 최대한 완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벡은 “로켓에선 오류를 허용할 수 있는 여유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벡은 “시작 단계에서부터 신뢰도가 떨어지는 로켓이 나중에 나아지기를 기대해선 안 된다”며 “설계 단계에서부터 100% 신뢰도를 갖춘 로켓을 제조해야 한다. 그래도 현실을 고려하면, 100% 신뢰할 수 있는 로켓이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시시콜콜한 것까지 간섭하는 ‘마이크로매니저’라는 비판에 동의하면서, 이는 신생 기업에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로켓 산업은 잔인한 산업입니다. 항상 물리와 싸워야 하고, 몇 달 동안 제작한 로켓이 살아 있는 동안은 160초뿐이에요. 이게 궤도 발사체가 아니라, 거대한 불꽃놀이로 바뀌는 데에는 아주 작은 실수 하나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