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삼체>와 류츠신의 원작 :
우리는 <삼체>에 대항할 준비가 되었는가?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의 'SF대작 읽기'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와 류츠신의 원작소설 <삼체> 번역본,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됐다. 

 

문명의 위협부터 '빅 크런치 가설'에 따른 우주의 종말까지를 다룬 장대한 스케일의 SF걸작 <삼체>의 넷플릭스 드라마가 연일 화제다. 왜 다들 이 어려운 드라마에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아시아 최초로 SF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하고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의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이 작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삼체>는 기본적으로는 외계문명의 침략에 대해 다룬 작품이다(물론 원작의 뒤로 가면 삼체문명과 지구의 관계는 그저 ‘점’처럼 느껴질 정도로 스케일이 커지지만 시즌1의 이야기에 한정짓도록 하자). 매우 흔한 주제이다. 하지만 <삼체>는 이 흔한 주제를 아주 멋지게 변주해냈다. 삼체문제라는 물리학의 난제를 통해.

 

그게 무엇인가? 우리는 과학시간에 두 물체(태양과 지구 혹은 지구와 달) 사이의 중력이 작용하는 방식을 배웠다. 깔끔한 방정식으로 서술된다. 그런데 태양, 지구, 달, 그 셋의 운동을 포괄하는 방정식을 배운 적이 있나? 없다. 왜 없는가? 우리가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푸앵카레가 삼체문제의 일반해는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정말 답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삼체운동이, 일반해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 작품에서 중요한 내용을 이룬다. 외계 종족 삼체인들의 세계에서는 세 개의 태양이 삼체운동을 하며 온갖 재난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예측할 수 없어(“항세기를 제외하면 모두 난세기요”) 지구정벌에 나서기 때문. 문명의 생존을 위해.

 

삼체인들은 인간컴퓨터를 만들어 3개의 태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답이 없음을 알게 된다.

 

이 지점이 바로 다른 흔한 ‘외계문명의 침략’을 다룬 이야기들과 <삼체>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우리의 적은 왜 적이 되었나에 대한 고찰이다. 뻔한 이야기들은 말한다. 탐욕 혹은 ‘나쁜’ 사상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적이 되었노라고. 하지만 <삼체>는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음을 고찰해냈다. 문명의 터전이 되는 환경에 문제가 있었다고.

 

이는 가깝게는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에서(‘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멀게는 법과 풍토성의 관계를 논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서(‘여러가지 생활양식을 만들어낸 것은 상이한 풍토의 서로 다른 욕구다’) 고찰했던 바이다. 그리고 이 환경의 영향으로 인한 ‘적’의 당위를, 삼체문제라는 세기의 난제를 이용해 멋지게 그려내었고 이를 ‘VR게임’이라는 장치로 맛깔나게 시각화했다. 그렇게 <삼체>는 그 어떤 작품보다 설득력 있는 침략자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베토벤의 질문은 훌륭한 픽션이라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그리고 삼체문명은 그래야만 했다.

 

이러한 탄탄한 기본적 설정 아래 사울 듀랜드, 잭 루니, 윌 다우닝, 진 청, 오기 살라사르(일명 ‘옥스포드 오인방’)의 삼체 세계에 대항한 활약을 그려냈다. 이들은 나노기술, 통찰력, 부(?) 등 그들의 특기를 하나씩 발휘해 인류를 승리의 길로 찬찬히 이끌어 나간다. 이기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전쟁에서.

 

드라마 <삼체>는 전반적으로 원작의 굵직한 사건들을 매우 충실하게 따랐지만 인물설정이 매우 크게 각색됐다. 원작에서 각각 분리된 시간과 공간에서 각각 활약하는 이들을 한 곳, 한 시점에 묶었다. 책의 2부에서 등장하는 면벽자, 3부에서 등장하는 계단 프로젝트가 시즌1에서 모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설정 덕분이다. 드라마라는 매체의 시간적 제약을 회피하고, 이야기의 밀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한 영리한 각색이다. 다만 원작에 없는 이 설정 덕분에 삽입된 옥스포드 오인방 간의 감정과 갈등을 그린 장면들이 극의 흐름을 갉아먹는 바람에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아쉬움이 있다.

 

원작과의 차이를 언급한 김에 한가지 더. 7부에서 예원제는 앞으로 면벽자가 될 사울 듀란드에게 아인슈타인의 악기 연주에 대한 농담을 건넨다. 이 장면은 원작에서 면벽자가 삼체문명을 저지하는 ‘암흑의 숲’의 저주를 깨우치게 되는 단초가 된 ‘우주사회학’의 씨앗을 심어주는 대화였다. 이 농담은 ‘암흑의 숲’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은유이긴 하지만, 2부의 핵심 아이디어이자 삼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철학적 기초가 되는 이 부분을 농담으로 대체한 것은 다소 아쉽다.

 

삼체인의 침공을 알게된 지구인들은 대혼돈에 빠져든다. 과연, 지구인은 삼체인을 막을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삼체>는 기초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작품답게 과학, 기술의 세부적인 내용을 강조한 ‘하드SF’를 표방한 작품이다. 다만 드라마에서는 대중성을 위해 극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모두 제외하고, 원작의 풍부한 과학이론과 세심한 기술적 논의의 극히 일부분만을 추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도 천체물리학, 나노기술, 양자역학, 차원의 펼침과 같은 흥미진진한 논의가 계속 등장하여 SF마니아들에게는 환호(혹은 설정오류에 대한 분노)를,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새로운 지적쾌감을 선사한다. 대중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야말로 SF장르 작품의 가장 큰 사회적 가치라 할 때, <삼체>는 그 가치에 무척이나 충실했다.

 

원작자 류츠신은 ‘작가의 말’에 “과학소설이 다른 환상문학과 다른 점은 그것이 진실과 가늘게라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의 현실은 어디에 연결되어 있을까. 삼체문명은 먼저 지구의 과학기술을 붕괴시켰다. 그리고 원작에서는 노골적으로 언급되지만 그들이 지구를 점령한 이후에는 지구인들의 출산을 금지시킬 계획이었다. 완벽한 인류의 말살을 위해. 기초 과학의 말살, 그리고 출산의 종말. 지구의 어떤 한 국가가 떠오른다. 우리는 <삼체>에 대항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최기욱 변호사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플랜트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엔지니어 및 리스크매니저로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가 되어 문과와 이과, 이론과 실무를 넘나드는 배경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작가, 강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비바! 로스쿨>(박영사. 2022), <엘리트문과를 위한 과학상식>(박영사. 2022), <잘 나가는 이공계 직장인들을 위한 법률계약 상식>(박영사. 2023)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