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칼럼 SF읽기] 미키7:
나는 익스펜더블! 그럼 우리는?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가 본 애슈턴 작 '미키7'과 '미키17'

※ [주말칼럼 SF읽기]를 쓰는 최기욱 변호사는 SF 열혈팬. 우주시대의 씨앗을 뿌린 SF명작들을 영상 리메이크 작품과 비교해 소개해온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의 SF명작 읽기'를 개편해 우주문화의 공감대를 넓히는 칼럼코너로 마련했다. 이 글은 코스모스 타임즈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거액' 영화 <미키 17>이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됐고, 오늘 3월 7일 미국에서 개봉된다. SF칼럼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 급하게 영화를 봤고, 이미 깊은 애정으로 읽은 원작소설 <미키 7>과 함께 생각을 정리했다. 물론, '스포일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에드워드 애슈턴의 <미키 7(원제 MICKEY7, 2022)>은 SF적 상상력에 유머와 액션, 그리고 철학까지 한스푼 부어넣어 수많은 SF팬들을 열광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리고 2025년 2월 28일, 이 작품이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감독 봉준호의 손 끝에서 재탄생했다. <미키 17>이다. 과연 이 원작은 어떤 매력으로 SF팬들을 사로잡았는지,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이를 어떻게 영화화했는지 알아보자.

 

'익스펜더블'이 된 미키. 기억과 정체성을 유지하는 다른 몸은 과연 같은 사람일까? 테세우스의 배는 같은 배일까? / imdb.com

 

▶'익스펜더블' 미키

“당신은 겨우 오늘 아침부터 존재했을 뿐이고 오늘 밤 눈을 감을 때까지만 존재한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삶에서 실제적으로 달라지는 점이 있을까? 달라진 점을 눈치챌 수는 있을까?”

 

<미키 7>은 추운 개척지 행성 니플하임에서 벌어지는 복제인간 미키, 그리고 '원주민 외계인(?)' 크리퍼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주인공 미키 반스는 '익스펜더블(소모품)'이라는 직업을 맡는다. 개척지 행성에서의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고, 죽게 되면 저장된 DNA와 기억 데이터를 이용해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이 삶이 반복된다. 끊임없이. 그러나 미키 7이 한 사고에서 살아남아 기지로 돌아왔을 때, 이미 미키 8이라는 새로운 복제본이 만들어진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두 버전의 미키는 동일한 기억과 정체성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진짜' 미키인가? 혹은 둘 다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는가?

 

모두가 잘 아는 '테세우스의 배' 패러독스다. 이 패러독스는 배의 모든 나무 판자를 하나씩 교체했을 때, 그것이 여전히 같은 배인지 묻는다. 더 나아가, 교체된 판자로 새로운 배를 만든다면, 원래의 배는 어느 쪽인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각 미키가 동일한 생물학적 구조와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여전히 동일한 존재인가? 아니면 각각의 미키가 완전히 새로운 개체인가?

 

수많은 SF작품에서 다룬 '정체성'의 문제를 '익스펜더블'이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장면이다. 우리는 테세우스의 배 패러독스를 통해 정체성이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문제는 미키 7과 미키8은 동시에 존재하는 각각의 개체라는 사실이다. 둘 모두 동일한 기억과 성격을 공유하며, 무엇보다 모두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DNA에 기억과 성격까지 복제해놨다면 '과학'의 관점에서는 둘은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둘은 결국 각각의 사람이라는 것을.

 

원작의 미키7과 달리, 불쌍한 성격과 무기력한 조건들에 초점이 맞춰진 미키17. / imdb.com

 

▶그리고 봉준호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은 <미키 7>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봉준호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더해서 만든 새로운 이야기이다. 니플하임이라는 추운 행성에서 미키가 중복 복제되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들키며 벌어지는 스토리라는 기본적인 틀을 빌려왔지만 많은 것이 변했다.

 

SF의 이야기 틀을 빌려왔지만 장르적으로는 정치풍자극에 훨씬 기울어졌다. 개척지 사령관 마샬은 정치인으로 설정이 바뀌어 '못되먹은 상사'에서 사회적으로 나쁜 선택을 강요하는 '무능한 정치인'의 면모가 강조되었다.

 

또한 주인공 미키(7 또는 17)의 성격 측면의 변주도 주목할 만하다. 원작에서는 어느 정도는 사교적이고 유머러스했던 주인공이, 완전히 내향적이며 더 불쌍한(?) 성격으로 설정되어 경제논리에 의해 위험한 일에 내몰리는 젊은 노동계층의 무기력함을 집중조명했다.

 

그리고 원작보다 미키를 훨씬 더 많이 죽임으로써 그렇게 죽어가는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싸늘한 시선을 훨씬 더 비판적으로 그려냈다. 그들은 소모품에 불과하니까. 우리와는 다르니까.

 

“사람들은 인류가 먼 옛날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최근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참 멍청했다고 떠들며 우리에게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원작의 가장 중요한 논의이며 수없이 반복되어 등장하는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둘이 다투기는 해도 모든 것을 공유하는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통해 딜레마 그 자체를 강조한 원작과는 다르게 봉준호 감독은 '미키 17'과 '미키 18'의 성격을 극도로 차이가 나도록 설정하여 둘이 '별개의 개체'라는 점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테세우스의 이야기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그 패러독스로 인한 갈등을 극대화한 영리한 설정이다.

 

전반적으로 너무나도 봉준호 감독다운 작품이다. 그리고 이 이상의 칭찬을 하기는 어렵다. 그렇지 않은가?

 

아쉬운 점도 있다. 후반부에서 폭발하며 장대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작품이지만, 초중반까지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배경음악의 사용을 극도로 자제하며 장면 하나하나를 주의깊게 보여주는 느린 진행이 두드러지며, 사회풍자극으로의 장르 변경 때문에 극의 분위기가 상당히 무겁고 어두워졌다. 익살넘치는 재기발랄한 SF 장르를 기대했던 원작 팬들에게는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지점이다.

 

또한 내용적으로 동일한 DNA를 가진 인간이 여럿이 존재하는 상황인 '멀티플'이 왜 금지되었는가에 대한 에피소드가 완전히 바뀌었는데, 바뀐 내용이 원작 에피소드에 비해 울림이 상당히 약하다. 그리고 원작의 이 에피소드에 나오는 '총알 작전'이나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반물질 폭탄'은 밀리터리 SF 장르를 사랑하는 이들을 물개박수 치도록 만든 멋진 아이디어였지만 이 역시 영화에서는 아쉽게도 삭제되었다.

 

소설 속 미키와 달리 영화 속 미키는 독재자와의 투쟁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 imdb.com

 

▶오, 미키

<미키 7>은 SF 장르를 통해 인간 정체성의 본질, 인간 존재의 연속성과 독립성을 탐구했다. 독자들은 모두 미키가 되어 신체와 기억의 연속성과 개별적 인식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 자신을 놓아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여기에 더해 스러져간 수많은 현실의 미키들을 영화에 녹여냈다. 미키의 투쟁은 단순히 "내가 진짜다"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독립된 개체로 존재할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늘 정체성 문제같은 '어려운 문제'에 대해 폼잡고 토론하는 것을 지적유희로 즐기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겐 생존할 권리의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야 말로 이 토론의 목적이라는 사실을. 우리 사회의 미키들을 위해.

 


최기욱 변호사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플랜트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엔지니어 및 리스크매니저로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가 되어 문과와 이과, 이론과 실무를 넘나드는 배경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작가, 강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비바! 로스쿨>(박영사. 2022), <엘리트문과를 위한 과학상식>(박영사. 2022), <잘 나가는 이공계 직장인들을 위한 법률계약 상식>(박영사. 2023), <법무취업길라잡이>(박영사, 2024), <웃게 하소서>(바른북스, 202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