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칼럼] 우주시대, 달리자:
인간은 달리도록 진화했다

꽃샘추위 속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던 3월 16일 일요일 오전 8시, 광화문광장은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2만명의 러너들과 그들의 가족들로 가득 찼다. 자기 돈 내고, 그 추위 속에서 42km가 넘는 거리를 뛰겠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몸을 움직이며 환호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138억년 우주의 길고 긴 역사와 비교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한 사람 한 시대와 비교하면 길고 긴 200만년의 시간은 기나긴 ‘우주적 시간’이다. 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240만년, 혹은 50만년 전부터 시작된 인간의 진화는 하나의 방향성을 갖고 있다. 일어서고 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운동철학자의 말처럼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집단으로 멀리달리기를 축제로 즐기는 동물인 인간”이 어느 순간 탄생하게 된다. 

 

인간의 진화와 신체적 특징에서 현대인의 건강문제를 다룬 두 권의 책. / cosmos times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

<본 투 런(Born to Run)>이라는 책이 있다. 인간은 오랫동안 잘 뛰도록 진화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좀 과장적으로 말하자면, 뛰어야 사람이다. 다른 동물들과 대표적인 차이점이 장거리달리기라는 말이다. 데즈먼드 모리스의 책 <털없는 원숭이>가 상징하듯 거친 지구환경 속에서 인간은 가장 약한 존재일 수 있었다. 털도 없는 피부에, 날카로운 엄니와 발톱도 없고, 덩치가 엄청 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남고 덩치도 제법 커졌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달리기, 달리기가 답이다. 그것도 오래 달리기를 통해서 인간은 커지고, 생존할 수 있었다. 핵심적 영양소인 단백질, 사냥을 통해야 섭취할 수 있는데 그 방법이 바로 오래 달리기다. 사슴 한 마리가 아프리카 초원을 배회하고 있다. 사람의 먼 조상 10여명이 그 사슴을 몰기 시작한다. 1시간, 2시간 사슴을 따라 뛴다. 그러면, 털 투성이 피부를 갖고 있는 사슴은 체온이 올라 못견디고 죽어버린다. 그 사슴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모두들 둘러앉아 고기를 먹는다. 이것이 바로 작고 약한 인류가 단백질을 섭취한 방법이다.

 

인간의 진화는 이 과정을 더 잘하는 쪽으로, 그 결과로서 몸집이 더 커지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그러니까,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더 오래 잘 뛰어야 했고, 우리몸에는 그런 흔적들이 무수히 남아있다.

 

털없는 피부는 땀을 흘림으로써 오래 뛰어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게 했고, 고릴라보다 강력한 승모근은 무거운 머리가 뛰어도 흔들리지 않게 잡아준다. 두껍고 강한 아킬레스건은 달릴 때 발목 쿠션에 필수적이다. 크고 기능적인 엉덩이근육은 지구 최고의 오래달리기 선수 인간을 위한 장치다. 걷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아니다. 착각하면 안된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 역사적으로 가장 잘 뛴 마라토너로 꼽히는 체코의 마라토너 에밀 자토펙이 한 말이다. 인간은 달리도록 만들어진 동물이다.

 

비에 젖은 도로를 달리고 있는 마라톤 참가자들. 추위와 비바람이 큰 장애였지만, 굴복하지는 않고 뛰었다. / cosmos times 

 

▶강추위 속 마라톤 달리기

나는 1년에 한번 참가하는 마라톤대회를 지난 일요일에 치렀다. 일종의 의식처럼 또 한 살을 먹은 올해도 뛰었구나, 스스로 대견해 하는 시간이다. 사실 요즘은 마라톤 훈련을 열심히 하지 않기 때문에 속도에 자신이 없었다. 주말에는 산을 오르고 뛰는 트레일런을 하고, 평일에는 근력운동을 매일하면서 몸집을 키우고 있으니, 평지에서 빨리 뛰는 능력은 조금 뒷전일 수밖에 없다. 그대신 마라톤이 덜 힘들어지고, 뛴 다음의 회복도 빨라진다.

 

그야말로 천천히 오래 뛰면서 미션을 수행하던 먼 조상들의 달리기랑 비슷해지는 느낌이다. 그들에게 날씨나 몸 상태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 몸의 형태까지 바꿔가야하는 시간이었으니, 외부의 조건 따위는 견뎌내야 했을 터. 이번 나의 마라톤대회도 춥고 비바람이 불어대는 여건을 이겨내는 것에 중점을 둔 달리기였다.

 

비에 젖은 신발과 양말에 발이 퉁퉁 불어터지고, 발가락과 발등이 벗겨지기 시작했지만, 7시간 8시간 설악산을 걷고 뛴 경험들을 떠올리면서 끝까지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이 정도는 해내야 하고 해낼 수 있는 미션일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요소 하나가 등장한다. 수많은 사람이 대회에서 축제처럼 달리고, 모든 사람이 달려야 하는 몸을 갖고 태어나지만, 어떤 사람만 잘 뛰고 마라톤에서 목표를 이뤄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 대한 답은 의지다. 의지력, 결의, 결단력. 50만년전 살아남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진화의 방향성을 결정했고, 지금 그 비슷한 의지가 개인의 삶에서 성취감과 건강을 선물받게 한다.

 

우리 몸은 달리도록 만들어졌다. 길게는 200만년 동안, 짧게는 50만년 동안 그런 몸으로 진화했다. 그런데 최근 100년 안쪽에 갑자기 달리기를 멈춰버렸다. 그 긴 시간동안 뛰어야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몸을 갖고 뛰지 않으니 여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현대의 많은 질병의 기원이다. 과거엔 생활 자체가 달리기를 품고 있었지만, 현대는 완전히 반대다. 그러니, 일부러 시간을 내고 노력을 기울여 뛰어야 한다. 우리몸이 제대로 작동하길 원한다면...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 


최윤호 코스모스 타임즈 편집장

코스모스 타임즈는 2025년을 맞아 [주말칼럼]란을 신설, 'SF읽기'와 '우주시대 건강법' 등을 게재한다. '우주시대, 달리자'를 쓰는 최윤호 편집장은 우주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몸과 정신을 고양시키는 운동을 해야한다는 마음으로 운동을 실천하면서 칼럼을 쓰고 있다.  20년쯤전 마라톤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바위산 등산, 트레일런을 생활화하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태극권도 수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