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칼럼: 우주라는 테마파크]
우주 개발의 '백 스테이지'

"우주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실은 과학에 대한 상식도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칼럼을 시작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우주는 무엇일까'라는 순전히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입니다. '우주라는 테마파크'는 과학적인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아니, 못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우주를 통해 느끼는 테마파크처럼 다양한 즐거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김정우 교수의 글이다. 이 글은 코스모스 타임즈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


 

▶우리는 왜 ‘백 스테이지’에 주목할까?

 

뮤지컬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뮤지컬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백 스테이지 뮤지컬(Back Stage Musical)’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백 스테이지’란 관객들이 보는 메인 무대의 뒤편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공연 중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도 보이지는 않는 곳입니다. 메인 무대의 화려한 성공 뒤에 가려진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감동적으로 그린 뮤지컬이 바로 ‘백 스테이지 뮤지컬’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뮤지컬, <42번가>가 대표적입니다. 옆의 포스터는 2023년 국내에서 공연된 <42번가>의 포스터입니다. 2024년에도, 그리고 2025년에도 공연할 정도로 인기 있는 뮤지컬이지요.

 

한물 간 뮤지컬 배우를 주인공으로 공연을 준비하다가 개막 직전에 주인공이 부상을 입어 출연을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인공의 대체 배우였던 신인 여배우가 전격적으로 주인공에 캐스팅되었고, 모두가 힘을 합쳐 성공적으로 준비했던 뮤지컬을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리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1930년대 영화로 만들어졌던 작품을 뮤지컬화하여 1980년부터 공연된 세계적인 히트작입니다.

 

사람들이 메인 스테이지에 서는 스타들 못지않게 백 스테이지 스태프들의 성공에 공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들이 갖고 있는 인내와 열정, 그리고 집념과 협동심 등등을 통해 도저히 해내기 어려울 것만 같았던 결과를 내는 과정을 보는 재미 때문이 아닐까요? <42번가>의 경우, 전격적으로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배우가 엄청난 부담감을 딛고 일어나는 과정이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뮤지컬의 성공은 메인 스테이지에 서는 스타들의 역할도 크지만, 그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의 작은 노력들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주 개발에서도 메인 스테이지와 백 스테이지가 있지 않을까요? 메인 스테이지에 서는 주인공은 단연 우주 비행사입니다. 그들이 직접 우주선을 타고 가서 주어진 미션을 완수하고 와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들이 어떠한 위험이 닥칠지도 모르는 그 도전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체로 그것을 이끈 대통령이나 우주 담당 부서장들이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반면에 그들이 주목받기 위해서 백 스테이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바치고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우주 개발과 관련된 영화에서는 그들을 다룬 영화들을 보기 힘듭니다. 아무래도 우주 비행사들의 분투가 가장 극적이고, 큰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우주 개발의 백 스테이지를 그린 영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몰랐던 ‘우주 개발의 백 스테이지’

 

개인적으로 실제 인물의 삶을 그린 영화를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창작된 이야기보다는 진정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옆의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그래서 제가 참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입니다.

 

이 영화는 NASA에 근무하는 세 명의 흑인 여성 과학자들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인 수학자인 캐서린 존슨(Katherine Johnson)과 NASA의 컴퓨터 전문가로 손꼽히는 도로시 본(Dorothy Vaughan), 그리고 NASA 최초의 여성 항공 엔지니어인 메리 잭슨(Mary Jackson)이 그들입니다. 영화는 당연히 캐서린 존슨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들 세 등장인물의 공통점은 NASA의 계산원(computer)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컴퓨터가 정보처리를 해주는 전자 장치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그 말의 원 뜻은 ‘계산하는 사람’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포의 궤적을 계산하는 사람을 컴퓨터라고 불렀습니다. 주로 여성들이 그 일을 담당하였고, 영화 속에서도 NASA 내의 ‘East Computing Group’이라고 명명된 사무실에서 기계적인 계산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NASA의 Space Task Group에서는 1961년 프렌드십 7호 발사를 앞두고, 해석기하학 전공자인 캐서린을 프로젝트에 참여시킵니다. 캐서린은 그룹의 리더인 알 해리슨(Al Harrison)의 인정을 받아 그룹에서 가장 중요한 계산 업무인 궤적의 계산을 맡게 됩니다.

 

어느날 캐서린은 딸로부터 “엄마도 우주에 나가?”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리고 대답합니다. “아니야,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그 용감한 분들이 나가도록 도울 거야.”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NASA를 방문한 우주 비행사 존 글렌(John Glenn) 대령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하였을 때 캐서린은 “대령님의 궤적을 계산하고 있어요.”라고 답합니다. 이후, 여성은 참석할 수 없었던 펜타곤 브리핑에 알 해리슨과 함께 참석하여 프렌드십 7호의 착륙지점을 칠판에 백묵으로 정확히 계산해서 보여줍니다. 이를 본 존 글렌 대령은 캐서린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러나 NASA는 컴퓨터를 도입했고, 계산원들은 모두 직업을 잃을 처지에 직면합니다. 캐서린 역시 다시 이전의 East Computing Group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1962년 2월 20일, 존 글렌 대령이 탄 프렌드십 7호가 발사되게 됩니다. 그런데 발사 직전에 컴퓨터가 계산한 착륙좌표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발사가 지연될 수도 있던 위기의 순간, 존 글렌은 캐서린에게 검토를 맡기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캐서린은 정확하게 착륙좌표를 개산해냅니다. 그리고 발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됩니다.

 

▶우주 개발에서 ‘백 스테이지’가 중요한 이유

 

이후 캐서린은 NASA의 유인우주비행선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특히, 이후 1970년 발사된 아폴로 13호의 발사와 귀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달에 착륙했다가 귀환하기로 한 아폴로 13호가 뜻밖의 문제로 착륙이 불가능해집니다. 산소 탱크 폭발로 인해 문제가 생겨 전력과 물을 수급이 어려워진 것입니다. 따라서 전략과 물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달을 한 바퀴 돌아 바로 귀환하기로 합니다. 그와 관련하여 NASA에서는 전략과 물의 최소화를 위한 계산, 그리고 계획하지 않았던 새로운 궤도에 대한 계산을 하게 됩니다. 이런 계산은 통상적으로 몇 달, 몇 년이 걸리는 것이었지만, 몇 시간, 며칠만에 해내야 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주 비행사들이 위험해지고, 지구에 귀환하지 못하고 우주를 돌다가 사망하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폴로 13호 발사는 결국 실패했습니다. 달에 착륙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그것을 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폴로 13호 발사는 ‘가장 위대한 실패’라는 칭송을 듣습니다. 비록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NASA의 구성원들이 모두 지혜를 모아 우주 비행사들이 무사히 귀환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폴로 13호 발사와 귀환 이야기는 1995년 영화로 제작되었고, 2024년에는 실제 영상들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로 다시 한번 조명을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 캐서린이 참여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캐서린의 삶이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으로 탄생한 것도 역시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잘 알려져 있다시피, <히든 피겨스>는 당시 흑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인종, 민족, 언어, 종교, 성차별 등의 편견을 경계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당시 흑인과 여성들에 대한 차별을 자신의 능력으로 뛰어넘은 3명의 여성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당시의 캐서린 존슨은 그 복잡한 계산을 도대체 어떻게 했을까요? 새로 들여온 컴퓨터의 프렌드십 7호 착륙궤도 계산오류를 캐서린이 수정하였을 때, 그의 상관인 알 해리스는 “그 쇳덩이보다 훨씬 정확하게 개산해 냈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캐서린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컴퓨터가 갖고 있는 연산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기계식 계산기를 사용해 연필로 그 복잡한 계산을 해낸 것입니다.

 

<히든 피겨스>는 마지막 장면에서 실존 인물인 캐서린이 연필로 뭔가를 열심히 계산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실존 인물인 캐서린이 연필로 계산하고 있는 모습인 것은 그녀가 갖고 있는 위대함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그 장면은 마치 백 스테이지에서 묵묵히 노력하는, 작지만 위대한 영웅들을 칭송하는 송가라고 할 수 있겠지요.

 


김정우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오면서 다양한 기업의 수많은 카피를 만드는 등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에 깊이 관여해온 김정우 교수는 '스스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정의한다.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문화창의학부 문화콘텐츠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 교수는 <광고언어연구> <광고언어론> <광고, 소비자와 통하였는가?> <문화콘텐츠 제작> <미디어 글쓰기> <문화콘텐츠와 경험의 교환> 등 많은 저서를 썼다.